2013년 12월 16일이다. 피곤에 지친 몸으로 카페테리아에 앉아있다. 언제나처럼 과제에 집중하진 못했고, 누구를 핑계댈까 둘러보는 중이다. 아니, 좀 더 긍정적으로 써 본다면, 내가 절대 친해지지 못할 것 같은 현유진과 얘기를 많이 나눴고, 그 애가 내게 번호를 물어봤다는 것이다.- 조금이나마 그 애가 내게 마음을 연 것 같다. 이 곳에 와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내가 친해지지 못할 것 같은 애들과 친해지고 있다는 것이다. 약간이나마 넓어지는 것 같다.
지금 내 앞엔 형석오빠와 명진이가 나란히 앉아서 노트북으로 뭔갈 보며 웃고 있다. 이 그룹이 좋다. 명진이가 오빠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 기정사실화 된 이상, 그리고 아마도 오빠도 명진이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은? 아무튼 잘 어울리는 그 둘을 보면서 약간 외롭다. 전남친의품이 그립다. 요새 다시 그의 좋은 점만 생각나지만, 나를 다잡아야 한다.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. 내가 원하는 내 모습대로 발전하기 위하여.
햇살같은 명진이.
'당신은 안녕하십니까'라는 대자보가 유행중이다. <고려대 정치경제학연구회>에서 온 사람도 있는데, 그 사람이 내가 있던 곳의 사람인지 궁금해서 자꾸 쳐다보게 된다. 하긴, 이제 나와 상관 없는 곳인 것을. 그래도, 내가 미국에 있어서 그들과 동참하지 못한다는 것이 약간 아쉽다. 그 농성하는 텐트 안에서의 그들과의 시간이 살짝 그립다. 오늘따라 왜 조금, 살짝, 약간 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게 되는지, 내 말과 생각에 확신이 없는 것이 글에서도 드러난다.
교회를 다녀왔다. 강한 자만이 용서할 수 있다고 한다. 강한 자가 되어야겠다. 나를 용서할 수 있어야 남도 용서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. 그러니까, 이렇게 게으른 나를 다시 한 번 용서하고 내 밝은 미래를 믿어야겠다. 기독교에 좋지 않은 감정이 있지만 진취를 장려한다는 점 만큼은 좋은 것 같다. 암울하게 정해진 내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찬 느낌.
시적인 언어를 쓰고 싶다. 노력해야 한다.
좐의 말에 따르면 샘이 동성애자라고 한다. 너무 어려서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다가도 나의, 그리고 그 애의 열여덟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린 것 같지도 않다. 퀴어수업을 듣고 있으면서 동성애자일 것이라는 말에 정색하다니, 나도 참 엄청난 헤테로구나 생각했다. 그리고 곧 쌤이 동성애자이든 아니든 상관 없이 그 애는 좋은 애라고 생각했다. 나의 이 발전을 그 애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는데, 아쉽게도 이미 나는 그 애와 상관없는 사람이다. 그 애는 자신의 연인과 대자보가 펄럭이는 이 사태를 행복하게 논의하고 있을까. 그 애가 그러길 빈다. 사강을 부러워했던 그 애.
가야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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